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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라재 침묵
기사 입력 2018-09-14 11:41:20  

달라재 서북쪽 어구에 깎아지른 바위벼랑 하나가 우중충 솟아있는 데 옛 사람들은 그 바위를 불굴라재라고 불러왔다. 한갈래 물줄기가 천년 세월을 버티고 살아온 거대한 바위 옆을 휘감고 흘러지나간다. 세상 풍파 서리서리 맺힌 세월의 두께가 그 력사를 풀어보려는 이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얼마나 많은 선인들이 태여나 이 세상에 던져져 세상과 부딪치며 온갖 풍상고초 가슴에 품고 저 무언의 불굴라재 바위처럼 굳건히 살아왔을가

작가 최서해는 1910년부터 1923년까지 달라재 지역에서 겪은 극한적 상황의 생활고와 혹독한 체험을 탈출기에서 펼쳐보여준다. 생선 장사 두부 장사를 하면서 연명했지만 갓난아이는 젖 달라고 보채고 겨울이 닥쳐오자 땔나무가 없어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순사에게 잡혀 매를 수없이 맞는 처참했던 눈물겨운 실상을 그려내고 있다. 18세기 말 19세기 상반기의 달라재는 온갖 재해가 휘몰아친 고난의 년대였다.

오늘날에 와서 이런 옛 선인들의 삶의 궤적을 반추해보면 그 시대 삶의 밑바닥에서 뒹굴며 몸부림쳤던 그 처절한 울부짖음이 암흑기를 뚫고나온 이 땅에 살다간 수천만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겹겹이 바위돌에 얹혀 쌓이고 쌓여 불굴라재와 같은 거대한 조형물로 빚어놓은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바위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감지하고 낭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있던 바위를 결코 무심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

자고로 지명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 사람과 그 시대 문명과 함께 묻어 따라 간다. 일찍 달라재 일대에서 성행한 바 있던 산 치성 부근 치성은 재가승 불교문화의 영향과 그 력사적 흐름과 관련되여있다.

복술 혹은 무당 집 서쪽 끝에 나무 장대를 세우고 장대 끝에 새를 신령스러운 존재로 모신다. 이는 이들이 굿을 할 때 새가 천상의 길 안내를 한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재가승 부락의 경우 돌장승 솟대를 닮은 자연적인 경관을 찾아 마을취락을 이루었는데 이런 풍속은 생활 곳곳에 깊숙이 투영되여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숨겨진 그 력사의 실마리를 더듬어 볼 수가 있다.

불굴라재 지명을 옛날에 낭떠러지에 낭 비둘기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해서 비롯된 이름이라 전해지나 그 정확한 지명유래는 사실 깎아지른 바위벼랑을 솟대로 보고 낭 비둘기를 천상과 지상을 오가는 사자로 간주하던 샤먼 의식에서 기원 된다. 다시 말하면 하늘 높이 치솟은 불굴라재와 비둘기를 솟대 형상에 옮겨놓은 지명 걸작이다.

라재(砬子)라는 단어는 선바위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우리 말에는 낭떠러지라는 말이 있는데 ‘낭’과 ‘떨어지다’로 분석됨을 알 수가 있다. 낭은 그 자체로도 낭떠러지를 뜻하는 자립 형태소여서 19세기 말까지 단독 형태로도 사용되였었다. 낭은 ‘랑’이나 ‘넝’으로도 표기되여 있는 점으로 보아 라재와 어원적으로 강한 친연관계를 가지고 있다. 함경도 방언에는 가파른 언덕을 뜻하는 양창이라는 말도 있다.

불굴라재의 불굴(鵓鴣)은 낭 비둘기를 뜻하는 옛말로 알려지고 있지만 목과 가슴팍 주위에 흑백 점과 줄을 두룬 특징으로 뻐꾸기와 류사하여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뻐꾸기로도 해석되고 있다. 뻐꾸기가 '탁란' 방식으로 번식하는 자연현상은 잘 알고 있지만 뻐꾸기 비둘기 불굴의 언어변천과정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우리 력사의 길목에서 파수꾼처럼 버티고 서있는 불굴라재라는 지명은 팔도 쌍봉마을 서북쪽에도 하나 더 있다. 지난 세기 80년대 전까지만 해도 팔도 불굴라재는 김일성 항일혁명 유적지로 선전되여 왔고 90년대로부터 시작하여 달라재 불굴라재는 항일 독립투사를 배출한 요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허나 정치 리념의 편향적 인식으로 지나치게 각색되여가고 있는 력사들은 마치 단단히 굳어진 바위돌처럼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진실된 력사를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불굴라재 력사는 몇몇 위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땅에 살다 간 수천만 이름 없는 민초들이 가로 세로 촘촘히 엮어놓은 것들이다. 불굴라재 바위에서 이들이 두 손 모아 심장으로부터 기원했던 그 울림이 세상 속으로 조용히 퍼져나와  우리 후대들의 귓가를 흘러들어갈 때 비로소 밀페된지 오랜 불굴라재 력사통로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와서 불굴라재 주위의 일부 어색한 풍경들은 진실 된 력사적 존재를 가로막고 있다. 불굴라재 옛 주인이였던 낭 비둘기는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가고 탐방객들의 발자국만이 띄엄띄엄 흩어져 남은 풍경은 때로 오가는 사람들 발길에 걸리적거린다.


허성운
연변일보 20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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